숯 / 정일근
산다는것은 시시해질 때
백두대간 어느 산자락에라도 들어가
작은 가마 하나 만들어 숯이라도 굽자
숯이라면 잡탄 흑탄이 아니라
졸참나무 백탄이 최고라지
해지기 전에 졸참나무 한 짐을 지고 내려와
밤 새워숯을 굽자
나에게 무슨 제탄법이 필요 있으랴
그저 마음에 화엄의 불을 지피듯
나무에 불을 놓고
새벽이 오길 기다려야지
그때 가마 한 귀퉁이에
불혹의 삶과 이룬 것 없는 빈손도
함께 묻어놓아야지
삶이란 숯과 같은것
나무의 세월을 살다가도
언제나 숯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
숯으로 돌아가서도
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 것이려니
한 가마의 백탄 곁에서
나도 잘 굽힌 숯이 되고 싶다
죄업의 살과 뼈를 태우는
불길과 연기 속에서
숯이란 이름으로 신생하고 싶다
그리하여 다시 1천 도의 고열로
나를 태우고 태워
하얀 재 한줌으로 남아
세상만사에 활성하고 싶다 정일근 시인 출생 :1958년 7월 28일 (경상남도 양산) - 학력 : 경남대학교 국어교육학 학사
- 데뷔 : 1984년 실천문학에 시 '야학일기'
- 수상 : 2003년 제18회 소월시문학상 대상
- 경력 :2004년 시힘 동인, 문화공간 다운재 운영
2001년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- 시 '바다가 보이는 교실' 수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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